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교실 속 감정교육과 사회정서역량(SEL)

by 나이트소마 2025. 5. 23.

감정교육과 사회정서역량(SEL): 교실에서 배우는 공감과 회복의 기술

학생들의 학업 성취는 물론, 정신 건강과 사회 적응을 위해 감정 이해와 정서 조절 능력은 핵심 역량으로 떠오르고 있다. SEL(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교육 모델이며, 국내에서도 감정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본 글은 SEL의 개념과 교실 적용 방안, 그리고 현장의 과제를 탐색한다.

학습현장

정서가 흔들리면 배움도 흔들린다

“감정은 교실 밖의 문제가 아니라, 교실 안의 문제다.” 이 말은 현대 교육에서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에는 감정이나 정서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여겼지만, 오늘날 교육학은 학생의 **학습 능력과 정서 상태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의 불안, 우울, 분노, 사회적 고립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정서적 안정이 학업 성취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 목표로 떠올랐다. 여기에 더해 디지털 환경의 확장, 인간관계의 단절, 경쟁 중심 교육 문화는 학생의 **사회정서 역량(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SEL)**을 더욱 강조하게 만들었다. SEL은 감정 인식, 자기 조절, 공감, 관계 기술,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 등 **개인 내면의 조화와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위한 핵심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접근법이다. 이미 미국, 캐나다, 핀란드 등에서는 SEL이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학교 전체가 SEL 문화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감정코칭’, ‘회복적 생활교육’, ‘감정일기’, ‘감정자석판’ 등 다양한 감정교육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비정규 수업, 교사 개인의 노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SEL 교육 시스템은 미비한 실정이다. 지금은 감정교육을 교과 밖 활동이 아니라, **교육의 핵심 축으로 통합할 시기**다. 감정은 삶의 바탕이며, 배움의 토대다. 감정이 흔들리면 배움도 흔들린다.

SEL의 구성요소와 교실 적용 사례

SEL은 단순한 ‘감정 표현’ 교육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을 함께 기르는 전인 교육의 핵심 구성 요소**다. SEL의 대표적 프레임워크인 CASEL(미국 사회정서학습 협회)은 다음의 다섯 가지 역량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첫째,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다.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을 이해하고,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을 기르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교사는 아침 조회 시간에 ‘오늘 내 기분’ 카드 고르기 활동을 통해 학생이 감정을 인식하고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둘째, **자기 조절(Self-management)**이다. 스트레스 관리, 충동 조절, 목표 설정과 성취 등이 포함된다. 감정이 격해질 때 숨 고르기, 짧은 명상, 마음 진정 카드 등을 활용해 학생 스스로 자신을 조절하는 훈련이 이뤄질 수 있다. 셋째, **사회적 인식(Social awareness)**이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존중하는 태도다. 예를 들어 ‘감정 역할극’, ‘갈등 상황 모의재판’, ‘다문화 이해 활동’ 등은 사회적 인식을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수업이 될 수 있다. 넷째, **관계 기술(Relationship skills)**이다. 의사소통, 협업, 갈등 해결, 팀워크 등을 배우는 영역이다. 협동 프로젝트 수업, 감정 피드백 교환하기, 팀 목표 설정 활동 등을 통해 구체적인 관계 기술을 체득할 수 있다. 다섯째, **책임 있는 의사결정(Responsible decision-making)**이다. 윤리적 판단, 결과 예측, 공동체 고려 등의 능력이다. 토론 수업에서 '만약 내가 이 입장이라면?' 질문을 던지거나, 모의투표를 통한 공동 결정 과정은 이 역량을 높일 수 있다. SEL은 이러한 역량들을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학교문화, 규칙, 상담, 생활지도, 또래활동** 전반에 걸쳐 자연스럽게 녹여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교 전반의 공기처럼 스며드는 학습 환경**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현실에서는 SEL의 전면적 도입이 여러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교육과정에 정규화되지 않아 **수업 시수 확보가 어렵고**, 평가 체계가 정량 중심으로 구성돼 **정서적 성장을 반영하기 어렵다.** 또한 교사의 감정 노동 증가, 전문 연수 부족, SEL을 ‘감정 놀이’로 오해하는 시선 등도 난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SEL을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교가 지향해야 할 교육 문화이자 교육 철학**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SEL, 감정과 삶을 연결하는 교육의 새로운 중심

SEL은 미래교육의 ‘보조적 요소’가 아니라, **모든 학습의 바탕을 형성하는 본질적인 교육 방향**이다. AI와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가는 시대에, 오히려 감정 이해, 공감 능력, 협업과 소통은 인간만의 고유 역량으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SEL은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 전략이다. 앞으로 SEL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접근이 요구된다. 첫째, **교육과정 내 통합과 시수 보장**이다. SEL을 독립 교과로 두기보다는, 국어, 사회, 과학, 체육 등 다양한 과목 속에 **융합적 주제로 반영**하고, 정규 수업 시간 내 편성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과정 설계가 필요하다. 둘째, **교사 역량 강화와 지원 체계 구축**이다. SEL 지도법, 감정 중재법, 회복적 대화 기법 등을 포함한 **심화 연수와 멘토링 체계**를 제공하고, 교사의 정서 지원을 위한 상담 인프라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연계 강화**다. SEL은 가정과 지역사회에서도 지속되어야 하므로, 학부모 교육, 지역 기반 감정교육 센터, 또래상담 동아리 등 **다층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평가의 방향성 전환**이다. 수치 중심 성취도 평가를 넘어서, **포트폴리오, 자기성찰일지, 교사-학생 면담 기록** 등 질적 평가 방식으로 SEL 역량을 반영해야 한다. 다섯째, **학교 문화로의 정착**이다. 규율 중심의 통제 문화를 넘어서, **공감과 회복, 대화와 존중이 살아 숨 쉬는 민주적 생활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SEL의 진정한 목표다. SEL은 교실을 넘어서,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험 점수보다 중요한,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다.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공감이며, 경쟁이 아니라 회복이다. SEL은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